저자 : 김선자 기획 · 김막동, 김점순, 박점례, 안기임, 양양금, 윤금순, 최영자 글

발행일 : 2017년 11월 30일

형태 : 44쪽, 205×266

ISBN : 9791186797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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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 고개 지나 사랑재 넘어 심심산골 사는 곡성 할머니들의 시 그림책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통해 빼어난 시집이라는 극찬을 받은 곡성 할머니들이 시 그림책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눈이 사뿐사뿐 오네』에는 눈 오는 날에 얽힌 할머니들의 추억과 애환을 담아냈습니다어린 시절부모형제떠나간 남편을 그리며 지은 열 여덟 편의 시와 그림입니다느릿느릿 온 마음을 다해 지은 시와 소박한 그림이 독자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전합니다

곡성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도전시 그림책

곡성 할머니들이 삶의 애환을 노래한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가 도서출판 북극곰에서 정식으로 출간된 지 일년 반이 지났습니다. 할머니들이 며느리로 살아온 ‘시집살이’와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시작한 ‘詩집살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통해 할머니들은 많은 독자들에게 치유와 위로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눈이 사뿐사뿐 오네』는 곡성 할머니들이 곱게 써 내려간 시와 서툴지만 정성스레 그린 그림이 어우러진 시 그림책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첫눈을 기다리는 지금,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도전은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새로운 감동을 전합니다.

할머니들이 수놓은 고운 빛깔의 향연

곡성 할머니들은 늦깎이로 한글을 배우고 아름다운 시를 쓰면서 제2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에게 그림은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선도 삐뚤빼뚤하고, 그리고 보니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차라리 한글 공부를 더 하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눈이 어두워 색깔을 고르고 칠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투박한 손길이 느껴집니다. 투박하지만 정직하고 맑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할머니들은 자신의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면서 밝고 화려한 색감을 선택했습니다. 이 점이 시 그림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가 가진 특별한 매력입니다. 무지갯빛 눈송이, 등장인물이 입은 알록달록한 옷에서 삶을 향한 긍정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시에는 그립고 슬프고 서러운 감정이 담겨 있는데, 그에 반해 그림은 화려한 색이 덧입혀져 밝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시를 보며 눈물짓다가, 그림을 보며 미소 짓게 됩니다.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꾸밈없이 순수하게 할머니들의 인생을 들려줍니다.

온 몸과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할머니들의 시 그림책에는 우리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시집살이 詩집살이』가 아름다운 시로 독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한 것처럼, 『눈이 사뿐사뿐 오네』는 아름다운 시에 소박하고 진솔한 그림을 더해 더 큰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살아온 일생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어메는 나를 낳고 “또 딸이네.” / 윗목에 밀어 두고 울었다 / 나마저 너를 미워하면 / 세상이 너를 미워하겠지 / 질긴 숨 붙어 있는 핏덩이 같은 / 나를 안아 들고 또 울었다 / 하늘에서는 흰 눈송이가 하얀 이불솜처럼 / 지붕을 감싸던 날이었다

-어쩌다 세상에 와서, 안기임

 

시어머니는 이제 막 딸아이를 낳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며느리를 타박합니다. 며느리는

서러워 갓난아이를 안고 웁니다. 그날은 하늘에서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렸습니다. 안기

임 할머니는 하늘에서 하얗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자기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혼난 어

머니를 생각합니다.

 

눈이 와서 나뭇가지마다 / 소박소박 꽃이 피어 좋다 / 눈사람도 만들고 / 아버지가 만든 스케이트 갖고 / 신나게 타다 본께 / 해가 넘실넘실 넘어가고 / 손이 꽁꽁 얼었다 / 집에 들어간께 엄마가 / “춘데 인자 오니 / 인자사 들어오니 / 어서 방으로 들어가그라 / 손발이 다 얼었다 내 새끼.” 한다

-눈이 많이 왔다, 양양금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놉니다. 눈사람도 만들고, 스케이트도 타며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해가 넘실넘실 넘어갈 무렵 꽁꽁 언 몸으로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내 새끼” 하며 손발을 어루만져주며 반깁니다. 양양금 할머니는 눈이 많이 온 날, 어린 자기를 맞아주던 엄마를 생각합니다. 우리네 할머니에게도 엄마가 있습니다. 또한 한때는 눈 오는 날을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사뿐사뿐 오네 /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 사뿐사뿐 걸어오네.

-눈, 김점순

 

쇠 담뱃대를 밤새도록 땅땅 때리는 시할머니를 보면 시집살이의 고단함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을라치면 큰동서가 시집살이를 시킵니다. 마실을 가려고 해도 시아버지 눈치를 봐가며 바느질거리를 들고 갑니다. 김점순 할머니 눈에 사뿐사뿐 오는 눈은, 시어른이 어려워 조심조심 다니는 며느리 같습니다.

 

죽었든 풀잎도 봄이 오면 다시 살아온디 / 당신은 왜 못 올까 / 때로는 보고 싶고 슬프기도 하다 / 당신은 왜 못 올까 / 저 달은 세상을 다 본디 / 나는 왜 못 볼까 / 어둠 뒤에 가려진 당신을 / 나는 왜 못 볼까

-서럽다, 박점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합니다.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새날이 시작되는데, 먼저 떠난 남편은 돌아오지 못합니다. 박점례 할머니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시를 띄웁니다. 달이 뜬 밤, 모로 누워 남편을 그리는 박점례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눈 오는 날, 시와 그림으로 지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는 ‘그리움’의 정서가 녹아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을 바라보며 할머니들은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과 함께 놀던 동무를 떠올리고, 이제는 가 보지 못하는 고향을 생각하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남편을 생각합니다. 시 그림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를 보며 장면 하나하나를 쉬이 넘길 수 없는 것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곧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눈이 사뿐사뿐 오는 오늘, 당신은 누구를 그리워하십니까.

김막동김점순박점례안기임양양금윤금순최영자

전남 곡성 서봉마을에서 농사도 짓고 시도 짓는 할머니들입니다길작은도서관에서 김선자 관장으로부터 동시와 그림책으로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할머니들의 삶과 동시와 그림책이 만나 깊고 아름다운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완성했습니다『눈이 사뿐사뿐 오네』는 곡성 할머니들이 쓰고 그린 첫 번째 시 그림책입니다

『눈이 사뿐사뿐 오네』가 나오기까지

김선자_곡성 길작은도서관 관장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낸 후 모두가 기뻐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들의 너무나도 솔직한 이야기를 보고 몇몇 자녀들은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많이 속상해 했습니다.

“내가 괜히 시를 썼나 봐.”

“눈치 볼 것 없어요. 쓰고 싶은 이야기 맘껏 풀어 놓으세요. 가슴에 쌓아 놓고 아파하지 마세요.”

할머니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시 수업을 꾸준히 이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자녀와 손주들이 할머니들을 격려하고 자랑스러워 했으면 싶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시에 할머니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서 그림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할머니들은 그림을 그리자고 하면 공부는 안 하고 ‘뻘짓’만 한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아이고 뻘짓 좀 그만하고 글자 공부를 하믄 좋겄소.”

할머니들에게 그림은 뻘짓이었습니다. 받침 글자라도 하나 더 배우는 것은 공부인데 허구한 날 못 그리는 그림을 그리게 한다고 한마디씩 하셨습니다. 그림이라도 잘 그리면 신이 날 텐데 자신들의 눈에는 영 엉성한지라 그만하자고 못 그리겠다고 투정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할머니들 그림이 멋진 작품으로 보여서 포기하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못 들은 척했지요.

“아이고~ 어쩜 이리 잘 그리세요. 화가가 따로 없네요. 손주가 영락없이 할머니를 닮았네요.”

할머니들을 북돋우며 일 년을 달려왔습니다. 사실 제 눈에는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은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시집을 준비하면서 할머니들과 수업 시간에 눈송이를 그린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들의 눈에 보이는 눈송이는 독특했습니다. 문득 할머니들의 생애를 ‘눈 오는 날’을 중심으로 따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시집에서 눈 오는 날에 관한 시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들의 생애 중에서 눈 오는 날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눈 오는 날 태어나신 할머니, 눈 오는 날 부모님과 특별한 기억이 있는 할머니 등 눈 오는 날의 모든 기억들을 되새기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아~ 이제, 시로 써 오세요.”

한 주가 지나 다시 수업이 시작되면 쭈뼛쭈뼛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툭 던져 놓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내심 놀랐습니다. 그렇게 작년 6월부터 11월까지 열심히 시 쓰기를 하셨습니다. 이제 그림을 그려야 할 차례인데 사실 제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막막했습니다. 막무가내로 덤벼 들어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용감했단 생각이 듭니다.

 

종이에 눈송이도 그리고 아이도 그리고 할머니도 그리고 젊은 시절 자화상도 그리도록 했습니다. 그 중에서 할머니를 제일 잘 그린 분에게, 아이를 제일 잘 그린 분에게 주인공 그림을 덥석 맡겨드리고 나머지 여백을 모두가 함께 그리게 했습니다. 한 장면을 일곱 명의 할머니들 손으로 그리다 보니 웃긴 장면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틀리면 다른 사람도 다시 그려야 한다는 것이 부담되어 손이 떨린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한 장면 한 장면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뿌듯해 하셨습니다.

 

할머니 시인들은 초등학교, 고등학교 학생들과 ‘작가와의 만남’ 시간도 가졌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시집살이 詩집살이』가 인성 교육을 하는 데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셨습니다.

 

손주 세대들이 할머니들의 세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들의 시 그림책을 통해 세대 간의 소통의 장이 열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일 년 동안 뻘짓하느라 고생하신 우리 할머니 시인들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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