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_나의대중문화표류기_web

 

저자 :  김봉석 글

발행일 : 2015년 4월 1일

형태 : 272쪽, 128×185

ISBN : 9788997728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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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약한 소년의 대중문화 흡입기 껄렁한 것에서 삶의 자양분을 얻다!

일간지와 영화잡지 기자를 지내다 영화평론과 만화평론을 쓰는 프리랜서로 업을 삼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에이코믹스>라는 만화 웹진의 편집장까지.

종잡을 수는 없지만 꽤 다양하고 화려한 이력을 지닌 작가 김봉석이 책을 펴냈다.

그가 이번에 써 낸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는 장마철 비닐장판처럼 습하고 우중충했던 성장기에, 대중문화가 어떻게 자양분이 되고 그를 감쌌는지를 차분하게 읊은 자기고백서다.

한 때 <씨네21>과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하며 <숏 컷>이란 칼럼으로 ‘김봉석 마니아’를 양산하기도 했던 그는, 책을 통해 중구난방이랄 만큼 다양한 대중문화들의 섭렵한 과거와 작품들을 소개한다.

눈에 띄는 점은 그의 대중문화 소비방식이 지적 허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책을 통해 그는 무차별적일 만큼 광범위하게 빨아들인 대중문화가 그를 키운 대지였고, 어머니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무척 사적일 수밖에 없는 자기고객이 읽는 이들에게 동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가 만화나 음악은 물론 영화가 소설까지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전공자로서 자신이 습득한 문화의 소산들이 본인의 삶과 어떤 개연성이 있는지를 성찰하고 성찰한 그대로를 써 내려간 것이, 전문가들의 비평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 무엇을 던져주고 있다.

책에 따르면 그는 심약한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하면서 그는 세상과 소통에 두려움을 느꼈다. 안으로만 침잠하던 그의 유일한 낙(樂)은 형과 누나가 남겨놓은 집안 가득한 문학전집이나 영화와 만화책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안착한 작품들은 위대한 걸작들이 아니다. 작가 스스로 ‘쓸모 없거나 싸구려’라고 표현한 문화 부산물들이다. 이 심약한 소년은 세상을 피해 달아날 곳이 필요했고, 그렇게 발견한 곳이 시시껄렁한 것들인 공상과학이나 추리소설들이다.

그곳에는 명작엔 없지만 소년을 위로하는 재미와 ‘나’가 있다. 추리소설 속 살인자의 살인동기와 가해심리가 궁금했고, 공상과학 속 주인공의 외로움에 동질감을 느꼈다. 그곳에서 소년은, 실재에서 부재한 자신을 만났다.

20세기 끄트머리 겪은 소년의 ‘독백’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는 20세기 끄트머리인 80, 90년대에 유년과 청춘을 보낸 작가가 어떻게 대중문화와 조우하고 커왔는지에 대한 성장기다.

이소룡과 성룡을 통해 ‘강한 남자’를 꿈꾸고, <화성연대기>와 <그랑 블루> 속 주인공에게서 절대 고독을 경험했던 김봉석 작가는, 중학교 시절 부산으로 가족여행을 가서 처음 맛본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을 통해 느꼈던 문화 충격에 대해 얘기하고, 팀 버튼의 <배트맨>과 <크리스마스 악몽>을 보며 가면놀이 같은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다.

고등학교 시절, 조직(패밀리)을 완성하기 위해 산산이 조각나는 가족(패밀리)을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영화 <대부>를 통해 “패밀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패밀리를 부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법칙”임을 알게 되는 식이다.

싸구려 문화를 향유하던 작가는 그 지평을 시와 만화와 음악으로 넓힌다. 흡입에 가까운 수준으로 섭렵한 청춘 시절들의 작품들 속에 자신이 어떻게 매료됐는지 설명한다. 허영만의 <고독한 기타맨>나 <카멜레온의 시>와 전혜린의 <북해의 별> 그리고 <아르미안의 네 딸들>, <공작왕>, <북두의 권> 등 장르를 불문한 그만의 싸구려 탐닉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씹을수록 맛있는 기억

제목에서 보듯 그는 그의 문화 탐닉이 대단하거나 거창한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상과 조금 동떨어진 소년이 있었고 그 소년의 유일한 위안 거리가 소설이고 영화였으며 만화이고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머리가 조금 커지면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았을 뿐 ‘싸구려 대중문화’는 그에게 굉장히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그 놀이터에서 자신이 주로 갖고 놀던 놀이기구가 무엇이며, 어떤 기구가 재미있었는지를 얘기한다. 작가는 그렇게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른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체득하며 삶의 자양분을 얻었다. 너무나 사적인 회상에 불과할 수도 있는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가 씹을수록 맛있는 기억이 되는 이유는 우리 모두 자라면서 한 번씩 고민했던 지점에 그가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봉석 프로필

김봉석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씨네21>과 <한겨레신문>에서 기자로 활약하며 김봉석 마니아를 양산했다. 정작 본인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J-pop 등 다양한 대중문화의 마니아였다. 지금도 대중문화 마니아로서의 이력에 힘입어 영화평론가이자 대중문화평론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클릭! 일본문화』(공저), 『18금의 세계』(공저),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좀비사전』등을 저술했다.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전방위 글쓰기’를, 한겨레문화센터 ‘영화리뷰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현재는 『미생』의 윤태호 작가와 함께 만든 만화잡지 <에이코믹스>의 편집장이다.

글을 시작하며
序. 유년기의 끝

1. 스트레인지 데이즈
1-1 아무것도 없는 곳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1-2 가상의 세계에 빠지다 – 아이디어회관 SF문고
1-3 강한 것은 아름답다 – 이소룡, 성룡 그리고 이연걸
1-4 폭력에 빠져들다 – 동서추리문고와 모음사
1-5 아무도 없는 세계를 꿈꾸다 – 레이 브래드버리 <화성연대기>, 뤽 베송의 <그랑 블루>
1-6 영화라는 판타지 –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과 <로드쇼>
1-7 아이들을 위한 만화, 어른을 위한 만화 – 고우영, 박수동, 강철수의 만화를 보다
1-8 극장은 혼자 가는 것이 좋다. – <라스트 콘서트>
1-9 죽기 위해 살아간다 – 김성동의 <만다라> <황야에서>
1-10 세상에는 가면이 필요하다. – 팀 버튼의 <배트맨2>

2.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1 어른의 세계를 엿보다 – 프랜시스 드 코폴라 <대부>
2-2 지하실에서 반항하기 – 크리스챤 슬레이터 <볼륨을 높여라>, <헤더스>
2-3 다방에서 비디오를 보다 – 장 자끄 베네의 <하수구에 뜬 달>에서 로망 포르노까지
2-4 People Are Strange – Doors <People Are Strange>
2-5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 오찌아이 노부히코 <라스트 바탈리온>
2-6 시집을 읽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2-7 ‘한국영화’를 보다 – 이장호의 <바보선언>
2-8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2-9 호러에 빠진 나날들 – 토비 후퍼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2-10 말 없는 사막을 가다 – 빔 벤더스 <파리 텍사스>

3장 트루 라이즈
3-1 세상으로 나가다 – 라세 할스트롬 <사이더 하우스>
3-2 개인과 집단, 혹은 대의 – 이안 <색, 계>
3-3 습작은 연애편지로 – 장 폴라베노 <시라노>
3-4 실패한 영웅에 끌리다 – 임영동 <용호풍운>
3-5 시네마테크를 가다 – 레오스 까락스 <나쁜 피>
3-6 만화의 시대 – 허영만 <고독한 기타맨>
3-7 글을 쓰기로 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3-8 강하고 교활한 여성이 좋다. – 김용 <사조영웅문>
3-9 중독이라는 것. – 올리버 스톤 <도어즈>
3-10 열혈이 끝난 시간을 거닐다 – 아다치 미츠루 <터치>
3-11 올 것은 오고야 만다. – 리차드 켈리 <도니 다코>
3-12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 –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마리아스 러버>
3-13 죽음이라는 꿈 – 노지마 신지 <고교교사>
3-14 내가 살아가는 길 – 토니 스코트 <트루 로맨스>
3-15 싸우지 않고 살아남을 수는 없다. – 데이빗 핀처 <파이트 클럽>

에필로그
이 책을 권하며1 (『미생』『이끼』윤태호)
이 책을 권하며2(『내 연애의 모든 것』『약혼』이응준)

그래서 한 번쯤 돌아보고 싶었다. 내가 어쩌다가 그 싸구려 문화들, 쓸모없는 오락에 불과하다 말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왔는지를. 하지만 그런 찰나에만 몰두하던 소년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그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들여다보게 되었는지를. 그건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나라는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역사가 될 것이다. 나는 어쩌다 실제의 근심을 내던지고, 가공의 경이로운 이야기에 빠져든 것일까.

– 글을 시작하며(p12)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없었던 곳’을 떠올렸다. 오래전, 내가 있었던 곳. 운명이란 아마도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국민학교 5학년이 되자 언젠가부터 말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더듬더듬하며 간신히 터져 나오거나 아예 얼굴만 붉히며 말하지 못했다. 심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것도 힘들었다. 원하는 물건이 눈에 띄면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저거요’라고 겨우 말할 수는 있었지만, 보이지 않으면 길게 말을 해야만 했다.

– 아무도 없는 곳(p27)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모든 것이 변해버린 세계, 아예 시작과 근본부터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은 경이로웠다. SF에서가장 중요한 경이로움이다. 아이디어회관의 SF를 읽으면서, 그런 경이로움을 매 순간 느낄 수 있었다.

– 가상의 세계에 빠지다(p36)

이 책을 권하며 1

『미생』『이끼』  윤태호

 

아버지가 주신 모자란 학원비 때문에 미술학원에 다니길 포기하자 오히려 놀기에 적당한 돈이 손에 남았다. 미대준비반이라 야간자율학습에서 자유로운 나는 미술학원 가는 핑계로 학교를 나와 마지막 버스가 다닐 때까지 밤길을 걸었다. 전학 온지 얼마 안 된 나에게 광주는 신비하고 호기심 넘치는 곳이었고 손아귀의 돈은 (몇 푼 안되지만) 작은 용기를 주었다. 전남대 앞에서 충장로까지 걸어가 나라서적에서 사지도 않을 책을 본다. 한참을 서서 인간시장을 읽고, 카네기 처세술을 읽고, 쌍절곤 교본과 태극권 교본을 독파하고 나면 다리가 아파 더 이상 서있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그러면 서점을 나와 다시 걷는다. 동시상영관이 보이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어간다. 나인하프위크와 알 수 없는 홍콩영화를 연달아보고 막차를 타고 귀가한다. 이게 당시의 하루 일과였다. 돈이 없으면 영화는 생략. 그냥 걸었다.

일년이 지나 3학년이 되어서도 나는 비슷한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형편이 나아지지 않은 아버지는 여전히 부족한 학원비를 주셨고 청소해주는 대가로 절반 값에 다니기로 했다는 내 말은 아직 유효했다. 당시 광주는 전국적으로 들끓던 6월 항쟁의 여파로 매일같이 시위가 있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전남대 바로 앞이어서 언제나 최루가스가 교실에 가득했고 시위가 확대되면 학생들이 수업을 빠져나와 시위에 참여하곤 했었다. 아마… 시위가 정점이었던 어느 날 대열이 흩어지며 갑자기 나 혼자 있게 됐다. 길 양끝에서 다가오는 전경들 사이에서 공포에 질려있던 나를 누군가 잡아끌었고 그 아저씨의 간판집에서 잤다. 다음날 집에 갔을 때 아버지는 내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원에서 자고 간다고 전화했는데 걱정이 돼 학원으로 전화를 하셨던 거다. 얼마 안 되지만 어떻게 마련한 돈인데 그걸 허투루 쓰냐며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셨다. 난 아무 말도 못했다. 얼마 안 되는 학원비는 그날로 끊어졌다.

돈이 없으니 학교 미술부실에서 혼자 그림 그리는 나날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지 않아 좀이 쑤셨다. 분명 아버지가 대학을 보내줄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이게 다 뭔가 싶었다. 바로 일어나 학교를 나서는데… 뒤를 돌아봤다. 기다란 본관 건물에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3학년 교실 층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왠지 떠밀려 나가는 느낌에 걸을 수 없었다. 교실로 갔다. 누구하나 나를 신경쓰지 않았다. 다들 자기 공부만 하고 있었다. 마땅히 공부할만한 책이 없어 낙서를 하며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는데 전교 상위권이던 옆자리 녀석이 종이를 한 장 넘겼다. 조용한 목소리로 ‘내가 쓴 가사야, 읽어봐’. X나 유치했다. 그런데 잠깐 당황했다. 가사를 쓸 수 있다니. 아니, 가사를 쓰려고 생각 할 수 있다니. 가수, 탤런트, 코미디언은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꽤 많은 습작을 갖고 있었다. 미화부장인 나는 녀석의 글을 교실 뒤에 붙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서서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 만화가가 될 거야.’

비틀거리거나 무너져가는 삶의 체험에서 김봉석이 말한 ‘내가 어쩌다가 그 싸구려 문화들, 쓸모없는 오락에 불과하다 말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왔는지를. 하지만 그런 찰나에만 몰두하던 소년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그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들여다보게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그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모두 필요하며 소중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허술했던 날들을 생각해보면 분명 그렇다. 그래서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를 천천히 읽는다.


이 책을 권하며 2

『내 연애의 모든 것』『약혼』  이응준

 

인생이야 원래 허망한 것이지만, 만약 아름다운 추억마저 없다면 그것은 불안한 허망이 아니라 완벽한 지옥일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슬프고 그리운 허망에서 비롯되는 것. 사람은 삶의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 추억의 이정표들을 되짚어본다.

이제 전방위 전천후 평론가 김봉석이 시대의 폭염 속에서 우울한 꽃비가 내리던 그 시절 우리가 무엇을 읽고 보고 들으면서 우리의 청춘을 기어이 사랑했는가를 대신 술회해주는 것은 필경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가장 좋은 친구일 것이다.

요설을 일삼는 가짜 평론가들이 넘쳐나는, 문화파시즘이 호황인 이 21세기의 메트릭스 속에서도 제 주인의 성품을 꼭 닮아 담백한 그의 글은 한 진지하고 소박한 인간이 문화작품들 속에서 얼마나 스스로를 강철처럼 단련시킬 수 있는지를 추억의 즐거움으로 보여주며 현실에 낙담한 우리들에게 다시금 새로운 날들을 살아갈 용기를 권한다. 아, 우리는 얼마나 마음이 자주 아프지만 그만큼 순수한 사람들이었으며 미숙하지만 고뇌하는 영혼이었던가.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그 시절의 사랑에게 오늘의 불안을 극복하고 희망의 편지를 적는 일이다. 완벽한 허망이란 슬프고 그리운 것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 지금 이 책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 지옥이 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