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7인의 작가전에 연재된 화제작!
조심하라! 당신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
신입 투명인간 다비도프 쿨 워터맨의 일상생활
오늘도 나는 거울 앞을 떠나지 못한다. 나는 투명인간이다. 투명인간이라서 좋겠다고? 영화 속의 멋진 투명인간을 떠올린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현실의 나는 개와 고양이에게 쫓기며, 주변의 불투명한 인간들로부터 늘 위험한 인물로 예의주시 당하다 못해 핍박받는 가련한 존재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익명의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다비도프 쿨 워터맨’ 향수를 착용하라는 추신이 달려있었다. 투명인간이 된 이후 처음으로 향수를 뿌리고 파티장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빈 파티장에 도착하자 누군가가 외쳤다.
“신입 투명인간 ‘다비도프 쿨 워터맨’씨를 소개합니다!”
놀랍게도 텅 빈 파티장에는 수많은 동족들, 아니 향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명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불투명인간이 될 수 있을까?
최우근만의 우주 최강 코미디가 돌아왔다!
최우근 작가는 <경찰청 사람들>로 방송작가 활동을 시작하여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 20년 경력의 베테랑 방송작가이다. 2013년 희곡집 『이웃집 발명가』를 출간하며 새로운 연극의 발명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웃집 발명가』는 ‘올해의 청소년 도서’와 ‘2014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도서로 선정되어 탁월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최우근 작가가 이번에 도전한 분야는 소설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기획한 7인의 작가전에 초대되어 2014년 11월부터 4개월간 『안녕, 다비도프氏』를 연재했다.
최우근 작가는 희곡집 『이웃집 발명가』를 통해 어둠전구나, 물질 소멸기, 물질 생성기와 같은 기발한 발명품으로 많은 독자들을 놀라게 했다. 『안녕, 다비도프氏』는 새로운 연극의 발명가라는 찬사를 받았던 작가 최우근이 발명해 낸 투명인간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통해 최우근 작가는 그만의 신선한 유머와 이전에 그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기발한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신의 이웃집에 살고 있는 투명인간
이 세상에는 투명인간이 살고 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당연한 말이다. 투명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찰은 투명인간에 대해 알고 있다. 투명인간은 언제나 경찰의 감시 대상이다. 도난 사건이나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그들은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그래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웃집에 사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어느 날 갑자기 당신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
『안녕, 다비도프氏』를 읽다 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누구나 투명인간이 될 수 있으며, 때론 이미 투명인간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은 누구나 죽거나 혹은 죽이는 존재이다. 투명인간인 당신이 다시 불투명해지는 방법은 스스로 죽거나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라면 당신은 스스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죽일 것인가?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섬세하고도 현실적인 판타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보이는 것으로 많은 것을 판단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투명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은 무엇일까? 투명인간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 투명인간들은 서로를 어떻게 알아볼까? 최우근 작가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상상력으로 섬세하게 일상 속의 투명인간을 그려낸다. 투명인간이라는 실재하지 않는 판타지가 현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어딘가에 투명인간이 살고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투명인간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에티켓
당신의 이웃집에 투명인간이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작은 배려를 부탁한다. 부디 그가 오가는 것을 보기 위해 바닥에 밀가루를 뿌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에게도 사생활이라는 것이 필요하니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당신이 뿌리지 않은 향수 냄새가 나는가? 그 엘리베이터에는 투명인간이 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간단한 목례로나마 인사를 한다면 투명인간은 당신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할 것이다.
교통사고가 났다면 혹시 모를 투명인간의 존재를 잊지 말자. 아무리 그가 안전벨트를 했다고 하더라도, 구급대원이 구해주지 않으면 투명인간의 생존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최우근 글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재학 중 문과대 연극반 활동을 하며 문학과 인연을 맸었다. 졸업 후 MBC에서 <경찰청 사람들>을 시작으로,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록 달리다> <복서> <파랑새는 있다> <형사수첩>, 드라마 <강력반> 등을 집필하며 20여 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2007년 첫 희곡 <이웃집 발명가>를 발표하였으며 2008년부터 연극으로 공연되어 관객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2013년에는 네 편의 작품을 담은 희곡집 『이웃집 발명가』 를 출간하여 그 해 ‘올해의 청소년도서’와 ‘2014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도서’로 선정되었다. 2014년 11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기획한 7인의 작가전에 초대되어 장편소설 『안녕, 다비도프氏』 를 연재하였으며, 신선한 유머와 기발한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p.26
“야 이 자식아, 니가 아무리 그렇게 됐다 그래두 그렇지, 집에서까지 꼭 그렇게 홀딱 벗고 돌아다녀야 되겠냐!”
나는 깜짝 놀라 내려다보았다.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만져보니 손가락질 받을 차림새는 아니었다. 추리닝 바지에 면 티셔츠, 거기에 이례적으로 양말까지 신고 있었고, 심지어 팬티는 두 개나 입고 있었다. 안 보여서 입은 줄 모르고 덧입은 거였다.
p.34~35
투명인간 수용의 제2기, 분노의 단계가 시작됐을 땐 하필 선거철이었다. 나는 후보자들이 번갈아가며 방송트럭을 골목까지 끌고 들어와 빽빽 떠들어대는 것에 화가 났고, 어떤 후보자의 공약에도 투명인간에 대한 정책이 없다는 것에 화가 났고, 그런 쓰잘 데 없는 생각을 하는 내게 화가 났고, 내가 다가가자 트럭이 떠난 것에 화가 났다. 사람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길거리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에 화가 났고, 어깨띠들이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찌라시를 돌리는 것에 화가 났고, 바로 곁으로 다가가도 내게는 찌라시를 건네지 않는 것에 화가 났고, 어깨띠들에 아버지가 끼어 있다는 것에 화가 났고, 그날 저녁반찬으로 한우 불고기가 오른 것에 화가 났고, 그게 너무 맛있어서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는 것에 화가 났다. 우리 아파트 담벼락을 어지럽히는 선거 포스터에 화가 났고, 거기 적힌 후보자들의 좋은 일이란 좋은 일은 안 해본 거 없다는 식의 가짜 약력에 화가 났고, 조작된 약력을 부러워하는 내게 더 화가 났고, 특히나 별로 잘나지도 않은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뽑아준 인쇄소에 화가 났고, 뻔뻔하게 그걸 갖다 붙인 후보자들에 화가 났고, 셀카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는 내 현실에 무지무지 화가 났다. 그리고 투표 당일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어 투표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p.40
투명해진 후에도 나는 가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곤 했는데 이전과는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다. 내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가 “야, 무슨 라디오를 듣는 거 같애.”, “채널도 바꿀 수 있냐?”, “노래도 한 곡 틀지?” 실없는 농담들이 쏟아졌다. 거기까지는 똑같았다. 다만 대화의 방향이 한 방향이었다. 도무지 썰렁하다고 투덜대는 놈이 없었다. 내가 “자식들아, 듣는 라디오 상처받는다.”라고 하자 또 다들 “맞아, 너무했어.”, “그래, 상처받겠다, 쟤.”, “라디오가 뭐냐, 라디오가.” 대화는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달려갔다.
그뿐인가? 내가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나도 아무도 내 뒷담화를 하지 않았다. 뒷담화만이 아니라 아예 한기가 느껴질 만큼 어색해져서 아무도 입들을 안 열었다.